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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기회” Freedom and Opportunity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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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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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기회”

Freedom and Opportunity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6-26


성서본문 : 갈 5:1,13-2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ㄱ)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1. 자유함 : 종노릇 하지 않음.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어원: 한자 自由 1. 무엇에얽매이지않고일을하거나또는그처럼지낼수있는상태. 자유는모든사람의중요한권리가운데하나이다. 자유를방종과혼동하지않아야한다.[1] 라고말합니다.

자유함이라는것은그리스도를통해얻어지는것이라고말하는이유가여기있습니다. 내가원하는것과그리스도가원하는것이이세상에서는충돌하게됩니다. 왜그렇습니까? 우리는그리스도인이고하나님의자녀이지만때로는내가원하고추구하는것만을위해선택할때가있기때문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래서 원래의 자유의 뜻처럼 우리가 종되었던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더 이상 종노릇 하게 되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해방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누릴수 있는 자유의 삶을 주님이 열어놓으신 것을 말합니다. 가장 인간성이 인간됨이 서로의 삶에서 드러나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안에서는 누가 누구위에 서있지 않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존중하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아갈수 있는 자유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의 나라이고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때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자유함의 의미는 종노릇 하지 않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종노릇하지 않으려고 많은 역사가운데서도 저항이 있었고 때로는 종노릇 하려고 일으킨 전쟁을 막아서기도 했던 것 입니다. 이것이 종노릇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일 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하나님의 성품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2. 육체의기회를 위한 자유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그런데 바울은 다음 13절에서 다시 종노릇 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진한 역설입니다.


아니?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케 했다고 하는데 다시 종노릇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노릇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 종노릇입니다. 똒 같은 말로 표현이 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은 전혀 다릅니다.



그전에 종노릇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종이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안에서 그렇게 할수 밖에 없기에 때로는 먹고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데 그 안에 속박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안에서 이뤄가는 삶이 아니라 이사람을 내가 어떠한 것을 가지고 지배하고 때로는 그 사람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무엇이 있기에 그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들 까지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우리는 순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고 거기서 벗어나면 때로는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아마 두번 정도이 미친짓을 하는 기회들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일까요? 우리의 이성이라는 것을 벗어버릴 정도로 우리를 미치게 하는 시간들? 그것은 사춘기와 제이의 사춘기 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나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지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이 그저 „난 저말에 꼭 반대로 할거야“라는 마음이 더 드는 시절이 있습니다. 반항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바로 사춘기 입니다.



그래서 이 사춘기가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정말 자유함을 갈망하는 영혼의 외침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모두다 그렇게 질풍노도로 살아가버리면 이 세상은 아마 더 어려운 처지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러한 반항과 자유에대한 갈망은 나의 욕망과 연결되어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유를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기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기회는 그렇게 우리의 욕망을 자유라는 것 아래 감추고 다른 이웃의 것을 빼앗고 다른 이웃을 억압하고 다른 이웃을 소외하고 내가 그 위에 서서 그를 부린다고 해도 나는 자유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난 성서는 이것을 육체의 기회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는 선택에 문제가 있음을 말합니다. 무슨 문제인가요? 바로 „이웃사랑“의 문제입니다.


14 온 율법은 ㄱ)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그래서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라는 말씀을 전제로 합니다. 이렇게 되어 질 때 나의 관점 많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사람의 관점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다른 이웃의 삶도 나의 삶 만큼이나 소중하고 귀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행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속이게 되지요. 이웃을 사랑하는 척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우리 삶에 많이 들어나지요. 그리고 그것은 오늘 본문처럼 피차 서로 물고 먹으면... 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 길은 멸망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은 그렇게 멸망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이러한 경쟁과 우위점함의 논리에서 내가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이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것을 서로 물고 먹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멸망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 물고 먹는 것의 결과를 뒤에서 이야기 합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러한 것들이 어떠한 것에서 근거합니가? 내가 저사람을 물을려고 잡아 먹어야 하는 욕망의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친절함과 고상함 그리고 아름다움들이 진, 선, 미 들이 그렇게 판단되어 지는 세상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세상을 사탄은 예수님을 세번 시험하면서 나에게 잠시 넘겨준 세상이다 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런식의 것들은 다 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물고 먹게하는 삶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원수맺고 분쟁하고 시기하고 분내고 당짓고 분열하고 투기하고 술과 음행과 우상과 주술에 취하고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3. 진정 자유하는 종노릇 :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럼 무엇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입니까?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욕망은 성령의 일을 거스르고 성령도 당연히 그 반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이 욕망에 진다라고 말씀 합니다. 원하는 것은 분명 성령의 일이고 이웃을 나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척은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그렇게 못하는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여기서 바울은 율법을 이야기 합니다. 마치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러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는 것에 대해 율법을 지킴으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 욕망을 억누르다 결국 너희는 그 욕망에게 다시 폭발하듯 잡아먹힌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이 요청됩니까? 바로 성령의 인도를 요청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 그 율법 아래서 나의 욕망을 억누르며 지금 나는 잘하고 있어 라는 그러면서 동시에 무엇을 합니까? 나는 잘하는데 너는 왜 그래? 라는 식의 판단과 정죄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의 가장 저급한 표현입니다. 정죄는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왜요? 사실 정죄는 루시퍼,가 하는 것입니다. 참소자, 검사인 루시퍼가 계속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데 너는 왜 못해라는 정죄도 당연히 같은 의미의 정죄가 됩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욕망을 승화시키는 사람들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은 사라지고 나만 우위를 점하고 잘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가치를 따름입니다. 그 욕망이 십자가 앞에서 사라짐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산다고 말만 하지 말고 그렇게 행하라고 요청하십니다. 행함은 선택을 말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그 선택이 과연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고 사는가? 아니면 정죄와 판단과 시기와 질투의 내 욕망이 기반이된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가를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수 없는 사람들에게 할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지혜이고 인도합입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나만을 위한 헛된 영광을 구하고 서로 노엽게하고 투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나를 위해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행복을 추구하되 이웃의 삶에도 관심하라는 말씁입니다. 내가 성공하지 말하는 말이 아니고 성공이후에 이웃과 나누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성서는 서로에게 종노릇 하는 삶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의 선택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속에서 함께 기동하시며 그분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간구하십시다.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선택하고 결정하여 열매를 맺읍시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지는 삶 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복이 있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아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1]낱말 위키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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