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화를 다루는 방법”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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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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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루는 방법”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5-08

성서본문 : 에베소서 4장 21절 – 32절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1, 들어가면서 : 분노사회, 피로사회

이 시간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예배의 처소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문안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예배합니다. 성서 본문은 에베소서 4장 21절 - 32절의 말씀을 가지고 „화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버이 주일에 어버이를 공경하라 이런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었습니다. 가족들도 그렇고 교회 공동체 들도 그렇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서로 사람들간의 의견이 다르게 생겨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 대한 이해도 각각 다르게 생겨나지요. 상황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말을 해석하는 내가 누구인가? 아니 내가 어떠한 상태인가? 에 따라서 지금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이웃의 말이 내가 보기에 좋게도 들리고 내가 보기에 않좋게도 들리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 좋을때는 그래도 별 문제 없이 관계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이 나에게 뭔가 않 좋은 말로 들리기 시작할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바로 ‚화‘라는 것을 내게 됩니다.


화는 그럼 어떻게 드러나는 것입니까? 바로 뭔가 나에게 공정하지 못하게 대하는 것 같다. 라는 생각에서 일어나지요. 정의감이 그 근거로 있습니다. 정당하지 못하다. 공평하지 못하다. 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를 분노사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지우 작가의 분노사회라는 책에서도 분노의 근원에는 사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 공정, 옳음이 기반이 되어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독일 베를린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라는 책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회가 성과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1]라는 성과사회의 패러다임이 결국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낙오자가 되게 한다고 말하며 여기서 또한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일어나게 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화‘ 라는 것, 분노라는 것은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다가오는 감정이지요. 그리고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현실을 살펴보아도 참과 거짓의 부분을 놓고 또한 수많은 사회적 이슈안에서 작은 가정과 학교안에서도 자신이 속하고 유익이 되는 집단에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궁극적으로 그 집단에 도취와 열정을 바란다는 점에서 한쪽으로의 치우침이 존재하고 이러한 것을 통해 승리와 우월감을 얻고 내가 존재하는 구나, 내가 가치가 있구나 라는 왜곡된 자기를 다시 느끼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쩌면 에릭 호퍼가 말한 “자신과 화해한 자만이 세계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라는 명제에서 정확히 동일한 거리로 동떨어져 있게 됩니다. [2] 그래서 진정으로 자신과 화해한 것을 성서는 오늘 본문에서 와 같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렇게 새로운 존재가 된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은 바로 자신과 화해한 상태 나의 정의를 실현 시키기 위해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에서 탈출한 구원의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화의 근원에는 불공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공정의 감정은 나에게 화라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선 먼저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성서는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을 까요?


 2. 화는 나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가 문제이다.


그래서 성서는 화를 내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것, 즉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화를 낼수 밖에 없는 존재들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과 상이한 것들이 다가오고 나를 무시하는 것같고 공정하지 못하게 나를 대한다고 생각되면 속에서 피가 빨리 돌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얼굴도 불그스레해 지고 코에서는 김이 나기 시작하지요.

오늘 성서본문도 화를 내지 말라 화를 내면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라고 말하고 있지요. 나는 화를 절대 안내요. 라고 말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아주 평온을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화를 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화를 안낸 것은 아니지요. 아마 마음으로 삭이고 또는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 갔는데 나중에 그 화라는 것이 한꺼번에 터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는 정상 적인 것이다 라고 말하는 성서를 오히려 인정하는 것이 더 정신 건강에 좋을 듯 합니다.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화가 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화를 다루어야 할까요?


성서는 사실 분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기 보다 분은 내어도... 그 다음에 어떻게 할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곱씹어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합니다.


성서는 분명 화를 품고 계속적으로 있는 상태는 결국 죄를 짓게 되는 상태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고 합니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시37: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어떻게 열매 맺어야 할것인가? 가 바로 다음의 관건입니다.



3. 불평과 성냄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 10초의 침묵과 기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화를 다루는 방식 입니다. 그래서 잠언 16:32절에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낮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린다 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그 상태가 공정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화가 올라오는데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이러한 불공정의 상태를 계속 곱씹고 있는 나의 내면은 과연 진정한 평안을 얻을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며 때로는 폭력으로 까지 치닫게 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잘못된 자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정의감과 판단을 하나님께 맏기고 그 상황을 사랑안에서 해결할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을 묵상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상황에 집착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 보다 잠시 만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불같이 타오르는 순간에 그 멈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수 있는 귀중한 타임을 벌어주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정의감에 사로잡혀 말을 하는것에 앞서 잠시만 멈추어 서서 그 상태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조력자 (보혜사) 성령에게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불공정한 상황에 대한 정의감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 정의를 실현시키는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그분께 도우심을 구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부르짖기도, 불평하기도, 탄원하기도 합니다. 시편의 150편중 3분의 2가 탄원과 슬픔의 시입니다. 그러한 슬픔과 탄원으로 시작하는 시편은 결국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세상의 어떤 성과를 내어 내가 가치있게 되는 것이 아니며 나를 가치 있게 대해 주지 않아서 불공정하다고 느끼며 그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 집착하고 그곳을 함몰되기 보다 화가 날 때 진정으로 나를 이 사건에서 구원해 주시고 나의 진정한 가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혜를 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분노로 인해 생겨나는 좁은 시각, 나 중심적인 나의 정의감에서 벗어나 삶의 전체로 나의 시선이 확장되고 하나님이 이 슬픔과 불공정의 시간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는 만남의 시간이 되게 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4. 나가면서 : 분노가 찬송으로


때로는 이러한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병이 듦니다. 아니 병이 드는것도 모르고 스스로를 화를 통해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화병이 난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중심에는 자기중심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목사님 분명히 잘못 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것도 안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우리가 내는 분노는 결국 서로 분을 품게 하고 그 분노에 집착하게 되어 그 분노의 에너지는 우리의 일상을 삶겨 버리고 내 삶을 갉아먹고 고통하게 하고 서로 미워하게 하는 열매들을 만들어 낸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이 조율된 사람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됩니다.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화가 나는 순간 우리는 시편의 기자 같이 하나님께 시선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그 화와 정의감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탄원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 정의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안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열매들을 만나는 사건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분노는 삶을 다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분노의 에너지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분노에 집착하는 변화되지 못한 자기 중심적인 내가 오히려 변화해야 함을 발견할 때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로 새롭게 된 심령으로 새롭게 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이뤄가는 삶의 열매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매 순간, 작은 일들 가운데 그렇게 화를 다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때 그 화의 상황에 집착하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라 그것은 변화되어야 하는 자기라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구원이 매일 있어야 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잘못된 자기로 부터의 탈출입니다. 정의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의를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뤄가는 것입니다.


내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나는 한발짝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때 나의 탄식과 탄원은 시편의 기자와 같이 찬송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하며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됨의 능력이 함께 함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회복된 자아이며 새로운 존재이고 진정한 자존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는 사건을 기대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있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1] 피로사회, 한병철

[2] 분노사회,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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