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말” Words to help the needy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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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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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말”

Words to help the needy

박정우 목사 (Rev. Antonio Park)

2022-04-10


성서본문 : 이사야 50장 4-9절

4 주 여호와께서 1)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1. 들어가며 : 위로의 의미


이 시간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예배의 처소에서 임마누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문안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로 예배합니다. 성서본문은 이사야서 50장 4-10절의 말씀을 가지고 „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말“ 이라는 제목으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간구하면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은 정말 커다란 힘이 됩니다. 위로라는 것은 그사람에게 잘될것이야 다 괜찮아 라는 말의 의미를 담아서 하는 말로 통상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사람의 사정에 공감해 주는 것을 우리가 하는 통상적인 위로의 방법입니다.


요즈음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상담의 분야에도 이러한 공감과 이해의 방식으로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한다 라고 이야기 하며 이 라포(Rapport)는 라포(Rapport)란 '마음의 유대''란 뜻으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된 상태, 즉 서로 마음이 통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라포가 형성되면 호감·신뢰심이 생기고 비로소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서로 할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라포형성을 위해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그 상황에 같이 울고 공감하는 위로를 전합니다. 성서에서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라고 말씀 하신 주님의 말씀이 바로 그러한 의미일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어떻한 태도로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것이 „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말“이 되는 것인지 이 위로의 진정한 의미들을 발견해 보고자 합니다.


2. 학자들의 혀 :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혀


4 주 여호와께서 1)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오늘 본문에서도 분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수 있는 혀를 준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어떠한 혀입니까? 학자들의 혀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이 학자들의 혀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스승으로부터 듣고 그 스승이 언제 어떻게 말할것을 가르친 그 전통에서 나온 것 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을 가르침을 받는 자들 이라고 또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이해 방식으로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들이 바로 그 곤고한 사람의 사정에 공감하고 그 자리에서 함께 울어주는 그러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성서는 여기에서 이 위로의 방식이 어떻게 되어질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라고 말씀 합니다.


이 깨달음은 바로 그 말씀을 알아들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그 알아들음을 그대로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곤고한 자를 도와주는 가르침을 받는 자들의 혀를 이야기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오는 가르침을 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끔 곤고한 자를 도와주고 공감을 얻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며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성서는 또한 이야기 합니다.


약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대부분의 우리가 만들어 내는 말의 열매들은 이러한 열매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혜의 말들과 규칙들은 결국 완전하게 그 사람에게 위로를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 위로는 결국 위로로 그치게 됩니다. 그 순간 함께 한다는 동질감을 가지게 해줄 뿐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는 회복을 향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자들


하나님은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위로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안에서 그의 삶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회복을 일으키십니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여호와께서 귀를 여셨으므로 라고 이사야 사는 말하면서 그 귀로 들은 깨달음을 인하여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그 말씀 가운데 머물러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당시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며 이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전하는 것이 바로 이사야 40장 이후의 말씀 들입니다. 위로하라 내백성을 위로하라. 그 포로된 자들 을 위로하고 그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쁜 소식이 들려지자 당연히 그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핍박하는 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등을 때리고 수염을 뽑고 뺨을 때리고 모욕과 침뱉음을 당하는 상황히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우리들도 만약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의 삶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십자가형이라는 최고의 반역자에게 주어지는 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며 그 길로 가서 죽었습니다. 가장 강한 메시아의 모습으로 등장하시며 수퍼스타같이 사람들에게 떡과 고기와 병든자를 고치시던 그 창조주가 십자가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왜그랬을 까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만이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에 들어갈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귀를 열어 깨달았다 회복의 기쁜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희망하고 고대하며 어떠한 고난가운데도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야 한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4. 나가면서 : 고난의 주를 보라 – 약한신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그 상황이 수치의 상황이 아니며 분명 이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그의 회복과 기쁨의 소식을 전하며 살아가기에 주어지는 세상이 우리를 미워함이 라고 말씀 하십니다. 왜 미워할까요? 바로 세상의 영광이 최종 목적지라고 외치며 그것을 위해 서로 밟고 일어서고 서로 경쟁하고 서로 죽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가치입니다. 입신양명 떵떵거리고 살기 , 사람을 아래두고 부리기 등의 모습들이 그러한 권세와 권력과 부의 위치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진정한 부와 권세와 영광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가 죽어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부와 영광과 권세가 하나님의 힘이 우리를 둘러 싼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저 이 세상의 가치가 추구하는 비교하고 경쟁하고 서로를 넘어뜨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나에게 권력과 힘과 돈이 주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은 결국 나를 멸망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나만 잘되기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잘되는 것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되고 난 이후에 그 사람의 삶의 열매를 보면 결국 내가 다른 사람의 위에 군림하고 내 뜻데로 다른 사람을 부리고 자유하지 못하게 하며 돈으로 그 사람을 종속시키려는 일들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떵떵거리고 잘산다고 믿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바로 내가 얻은 힘과 부유함이 바로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임을 깨달음 자들입니다. 그래서 학자의 혀 가르침을 받은자들 깨달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곤고한 자들을 위로하는 말과 더불어 그들의 삶을 회복시킵니다. 말로 회복시키고 그들이 가진 힘으로 또는 권력으로 풍성함으로 필요한 자들에게 도움을 전합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자를 도운것과 같은 일들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추구해야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학자의 혀를 가진 사람들이 곤고한자들을 위로하는 말입니다. 말이 곧 행동이 됩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움가운데 불안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더불어 살아가는데도 그 불안함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더 경쟁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더 다른 하나님의 형상위에 군림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너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네가 스스로 왕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방식은 사탄에 절한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이가 말씀으로 자유하고 삶에서 물질 안에서도 자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런말 말아라 그런 세상은 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주님의 나라를 구하시며 살아가시길 요청합니다.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가장 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신것은 바로 우리가 소유하려는 방식의 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진정한 힘과 영광과 권세를 이루려 함이었습니다. 결국 가장 약한 신이 가장 강한 부활의 힘으로 우리에게 드러나셨습니다. 이 위로는 곤고한 자를 위로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회복시키고 더 나아가 그를 자신이 군림하는 왕국의 감옥으로 부터 지옥으로 부터 구원합니다. 이것이 고난의 주님의 삶이 우리의 삶에 주는 입니다. 우리가 가는 고난의 길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에 다가오는 당연한 고난입니다. 내 일이 안되고 내 계획이 안되어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선택을을 작은 나의 삶에서 하면서 살아가시길 그리스도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을 넓게 열어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과 영광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길에서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의 나라를 위해 구할 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말씀의 깨달음을 가지고 그 등불을 들고 찾고 구해야만 우리의 삶에 발견되어 집니다. 이렇게 주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며 매순간 주님의 나라를 찾으시길 그리스도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그를 통해 이러한 삶이 복있는 삶임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시는 놀라운 사건을 체험하는 한주간 되시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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